둘째 낳고 퇴원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인 것 같아요,
지안이가 '왜'라는 말을 쓰기 시작한 게.
(처음엔 발음이 '으애'였죠. ^^)
지안이 말 트인 이후로 "이거 뭐예요?", "엄마 뭐해요?", "안아주세요." 가 삼종공격세트(?)였는데
(엄마가 자기한테 좀 소홀하다 싶으면 저걸 무한루프로 돌려대서 좀 피곤했어요. 흐.)
'왜'는 저한테도 반가운 단어네요.
'왜'로 무한루프 돌리면 정말 피곤하다고들 하긴 하지만(충분히 그럴 듯. ^^)
그래도 생각해 볼 거리가 있으니까
삼종세트에 비해 재미는 더 있을 거 같거든요.
몇 주 전 주차해놓은 차에 탈 때 했던 대화예요.
(창문에 손이 닿자) 창문이 왜 뜨거워?
/ 글쎄, 음.. (햇볕 때문이라고 말할까 하다가) 차가 뜨거우니까 창문도 뜨거워졌겠지.
(침묵)
/ 그런데 차는 왜 뜨거울까? (라고 말하면 햇볕이라고 대답하겠지 기대하며 몰라서 묻는 척 연기)
(조금 생각하다) 우리 몸이 뜨거우니까 차가 뜨거운 거야.
/ 음, 그래 그런가보다. (아직 복사열 따윈 몰라도 되지 뭐. ^^)
서로 좀 피곤해서 별 말 없는 귀가길이 될 수도 있었던 게
이런 대화로 즐거워졌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대화를 어른이 아닌 아이가 먼저 시작했다는 게 뿌듯하고,
'왜'란 단어 덕분에 아이가 자기 머릿 속을 더 많이 열어보이게 되니
소통의 수준이 높아져서 반가워요.
(가끔은 "아침인데 왜 종이 기저귀 채워요? 천기저귀 채우세요." 하는 식의 간섭을 받기도 하지만.-_-)
평소에도 지안이는 "..는 ..하는 거야", "..해서 그런 거야"라는 말투를 자주 쓰는 편인데요,
(그 말 할 때 표정도 '내가 이런 원리를 가르쳐 줄게요' 하는 선생님 같은 표정)
그렇게 자기만의 논리를 펴는 걸 보면 참 귀여워요. ^^
비슷한 맥락으로 '지안이 생각에는 ..인 것 같아'도 자주 써요.
/ (놀이터에서) 저 아기는 아직 말 못해서 그래. 엄마 생각엔 저 아기도 두 돌 되면 말 잘 할 거 같아.
지안이 생각에는 두 돌 되면 말 안할 거 같아.
/ 그럼 언제 말하게 될 거 같아?
네 살 되야 말할 거 같아.
/ (^^)
두 돌하고 한달 남짓 지났을 때 한 대화인데,
뒤늦게 옮겨 놓으니 그 때의 감동을 다 전하기가 힘드네요.
지금만큼 말이 유창하지 않던 때 뜬금없이 '지안이 생각'을 말해서 신선한 충격이었거든요.
'와, 이제 이 녀석이 엄마와 다른 자기만의 생각을 당당히 말할 줄도 아네.' 하고요.
(다시 읽어 보니 그 땐 '두 돌 되어도'라는 말을 못해서 '두 돌 되면'이라고 했네요. ^^)
그러고보니 어설픈 논리가 먹히지 않게 된 게
저 '지안이 생각'과 '왜'의 결합 때문인 것 같네요.
/지안아, 자러 가야지.
왜 자러 가야해?
/(조금 멈칫대며) 잘 시간이잖아.
언젠가 아빠인지 할머니인지 대략 저런 식으로 설득력 없게 대답했더니 씨도 안먹히더라고요-_-.
엄마가 나서서 뭔가 다른 이유를 대며 해결했던 기억이..
그래서 이제 모든 걸 제대로 설명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귀찮은(-_-) 점이 있긴 하지만
사실 고마운 점이 훨씬 큰 것 같아요. ^^
어설픈 설득에는 넘어가지 않는 대신
제대로 된 설득에는 잘 따라 주는 편이거든요.
오늘도 양말 세 켤레를 겹쳐 신겠다고 우기는 상황을 이렇게 넘겼네요.
/ 셋 다 신으면 발목이 졸려서 피가 안통하거든. 심장에서 피가 어쩌고..(중략) 그럼 다리가 안예뻐져.
(수긍하며 물러서긴 하는데, 아쉬운 표정)
/ 그럼 잠깐만 셋 다 신어볼까?
(급방긋하며) 응.
(사실 양말 세 켤레쯤이야 신고 다녀도 괜찮은데 오늘은 엄마가 좀 귀찮아서ㅎ)
아무튼 들어주기 힘든(혹은 귀찮은^^;) 요구를 할 때는
저런 식으로 설득하고 적당한 타협안을 제시하면
대부분 서로 만족스럽게 잘 넘어갈 수 있어요.
그러고보니 몇 달 전부터 야단칠 일이 거의 없어진 게
(밥 먹일 때 엄마가 인내력 달려서 짜증내는 건 야단이 아니라 짜증이니까 제외하고-_-)
이런 이유도 있을 것 같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