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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1/13 19:31
연초부터 짐보리를 시작으로 지안이와 밖으로 나다닌 게 벌써 10개월째. 겨울 학기부터는 수업을 좀 바꿔야할 거 같아서 생각을 정리해봤다.

..라고 문화센터까지 생각하며 썼는데, 거의 다 짐보리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1) 짐보리: 한겨울의 놀이터

한겨울에도 애들은 적당히 나가 놀아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지난 겨울엔 입덧과 추위 때문에 내가 도저히 나갈 수가 없었다. 늦가을부터 '이건 아닌데' 하면서도 내내 집에만 있다가, 입덧이 조금 가신 게 1월 말. 놀이터는 여전히 내가 추워서 못가겠고, 유일한 선택이 학기 중간부터 등록 가능한 짐보리였다. 20개월짜리를 놀게 하느라 월 10만원씩 쓸 생각은 없었지만, 상황이 상황인만큼 한 학기만 해보자 싶어 등록.

(2) 성격의 발견

처음에 가장 놀란 건, 지안이가 무지무지무지 긴장하더라는 것. 낯을 가린다고도 할 수 있는데, 좀 다른 점은, 부끄럽다고 숨는 게 아니라 그냥 얼음! 하듯 얼어버린다는 점. 몸 뿐 아니라 얼굴도 얼어버려서, 남들은 싫어서 그러는지 부끄러워서 그러는지 구분을 못하더라.(엄마만 캐치할 수 있는 아주 미~묘한 표정의 변화가 있다.) 말을 걸면 애가 무표정으로 가만~히 서있기만 하니, 지능이 떨어지거나 애착에 문제가 있는 걸로 오해받은 적도 있다.ㅋㅋ

나도 처음엔 상당히 놀라고 걱정도 되었는데, 두어 달 하고나니 걱정할 일이 아니라는 게 명백해졌고(내가 집에서 선생님처럼 수업을 해주면 다 따라해서), 좀더 지나니 그저 웃겼다.(어떤 날은 수업을 1등으로 잘 따라하고 다른 날은 내내 무반응이고 해서. 그리고 사람들이 지안이를 오해하는 상황이 재미있어서.)

(3) 엄마의 역할

처음엔 선생님한테 내가 많이 어필을 했다. 예를 들어, 놀이 주제가 '원숭이가 되어서 바나나를 따먹어 봐요'인 날에, 선생님이 바나나(장난감)를 따서 지안이 입에 대주면 지안이는 얼음! 상태. 당연히 선생님은 지안이가 아직 상상놀이를 못하는 걸로 오해를 하신다. 혹은 아예 원숭이가 뭔지 모른다고 생각하시거나. 그럴 때 내가 "집에서는 벌써 다 하는데 선생님이 보시니까 부끄러운 거지?" 하며 지안이 대신 말해주는 식.

또 지안이가 집에서 선생님 사진을 보여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자주 말씀드리니, 선생님들도 지안이를 더 귀엽게 봐주시고 말도 자주 걸어주셨다. 가끔 엄마와 말하는 모습이 포착되면 "선생님 오늘 지안이 목소리 들어봤네!"하며 열광해주시고. (그렇게라도 목소리를 공개한 게 두 학기는 지나서였다.ㅋ)

아이가 아무리 수업시간에 지진아(ㅎㅎ)처럼 행동해도(자기가 앞에 나갈 차례인데 안나가고 있다든지) 엄마인 내가 활짝 웃고 있으니(집에서와 너무 다르게 행동하는 게 웃겨서 웃을 수밖에 없었다.ㅋㅋ), 다른 엄마들이 지안이를 좀더 좋게 봐준 측면도 있었던 것 같다. '진짜 지진아면 엄마가 저러진 않을 텐데, 그렇진 않은가봐' 라고들 생각했으려나? ^^ 거기서 사귄 어떤 언니는 "지안이는 새침한 게 묘한 매력이 있어."라고 말하곤 했다. 나중에 선생님한테 들으니 지안이를 예뻐하는 엄마들이 좀 있었다고 한다.

(4) 성실한 학생 되기

하지만 무엇보다 선생님들이 지안이를 좋게 봐주신 건, 지안이가 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 여름 특별 수업. '원시시대'라는 주제로, 간단한 호피무늬 옷 정도(그런데 애기 옷 중에 그런 게 어딨나.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그냥 왔다.)만 입혀와 달라는 선생님의 당부에, 우리는 이렇게 화답해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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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에서 난 재료로 할머니가 손수 만드신 것.(나는 디자인 참여.) 나는 산후조리 중이어서 할머니가 데려 가셨는데, 다른 엄마들이 자기 애를 지안이 옆에 세워놓고 서로 사진 찍으려 했다고.

게다가 9개월 수업 동안 한 번 빼고 전출, 엄마가 힘들 땐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온가족이 열심히 아이를 데려다녔으니, 선생님들께서 예쁜 학생으로 봐주실 만도 했다. 비록 수업 호응도로만 따지만 우수 학생과는 거리가 멀었을지라도.

(5) 짐보리에서 얻은 것

몸으로 열심히 놀았다. 엉덩이가 무거운 편이라 활동량이 늘 부족해보였고, 그러니 밥도 적게 먹고 밤잠도 푹 자지 않는 게 늘 아쉬웠는데, 어느 정도 고민 해소. 일주일에 두세 시간이었지만, 짐보리에서 배운 걸 집에서 해보며(화장대에서 이불로 뛰어내리기, 쿠션 위 달려가기) 활동량이 늘었다.

겁이 무지 많은 녀석인데(처음엔 놀이기구 바닥에 가느다란 틈만 있어도 겁이 나서 걸어가지 못할 정도였다.), 두려운 것에 도전해보면서 조금은 용감해졌다. 겁 많은 성격을 궁극적으로 확 바꿔야겠다는 욕심은 없지만, 아이는 자신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테스트해보면서 자신감이 많이 커진 것 같고, 어른들도 아이의 한계를 이해하고 어느 선까지 요구하는 게 적당한지 알게 된 것 같다.

개근상을 받는 재미를 알게 되었다. '뭔가 시작하면 빠지지 말고, 끝까지 열심히 하자'라는 가치를 아이와 공유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게 들리려나? ^^ 세 살짜리 버전으로 바꿔 말하면 "가기로 했는데 안가면 선생님이 실망하실 텐데", "오늘 안가면 나중에 개근상 못받을 텐데"라는 말에 분명히 반응한다는 거. 짐보리 가려고 밥을 꾸역꾸역 먹기도 하고, 선생님이 좋아하는 깨끗한 아이가 되려고 이도 잘 닦곤 했다.

처음으로, 친척도 엄마 친구도 아닌 모르는 어른과 관계를 맺어봤다. 난 사실 이 부분에 대한 기대가 컸는데, 성격상, 수업 특성상, 선생님과 아주 친해지긴 힘들더라. 선생님은 조금 멀리서 바라보며 짝사랑하는 존재로 자리매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또래들과의 관계에서 소득이 있을 뻔 했으나, 내가 바람같이 왔다 바람같이 사라졌던 관계로(둘째 젖 주러) 교류를 강화하기가 힘들었다. 이건 좀 아쉬운 점.

(6) 얻었지만, 꼭 필요하지는 않았던 것

잡다한 인지교육. 이건 문화센터도 마찬가지. 각자 상황에 따라 생각이 다를 테지만, 우리집의 경우엔 지안이와 끊임없이 대화를 나눌 어른들이 많기 때문에 모든 게 생활 속 교육이다. 단적인 예로, 추석에 "짐보리에서 보름달 배웠지?"하니 애가 "아니. 화투에서." 하더라는. 생활 속에서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걸 굳이 인위적인 설정 속에서 배우는 게 반갑지가 않다.

특히 짐보리 6단계로 넘어오면서는 너무 앞서나간다 싶은 것들이 있었다. '구기종목'이라는 주제 하에 이미 아는 축구, 농구가 나오는 건 좋은데, 아이스하키와 탁구는 좀 아니잖아. 그런 종목 경기를 본 적도 없는 애한테 풍선과 가짜 라켓을 주며 "자, 탁구하자." 하기도 뭣하고. 이런 반갑지 않은 주제가 걸리는 날은 놀러 왔다가 공부만 하고 가는 거 같아(게다가 제대로 된 공부도 아니고) 나도 별로 즐겁지가 않다. 요즘 아이들은 너무 이른 시기에 너무 많은 걸 배우게 된다. 몇 년 뒤에 알아도 아무 지장 없는데.  

(7) 앞으로의 수업 계획

짐보리 끝나고선, 신체활동 수업 하나, 음악 수업 하나, 기타(미술이나 통합놀이) 수업 하나 체제로 갈 생각. 신체활동 수업은 애가 그걸 통해 부쩍 용감해지는 게 보여서 당분간 주력할 생각. 다른 건 당장 크게 아쉽진 않지만, 내가 외출을 좋아해서, 그리고 좋은 선생님과의 관계유지(음악) 및 선생님 발굴(기타)을 위해서.

지안이를 기관에 늦게 보낼 생각이라, 그 전까지 꾸준히 들을 수 있는 수업을 찾는 중이다. 특히 문화센터 수업 중 아기부터 너대여섯 살까지 커버하는 장기 프로그램이 후보. 같은 선생님 아래서 처음에는 엄마랑 같이 듣다가 나중에는 자연스레 아이만 수업에 들어갈 수 있도록. 과목 불문하고 좋은(인격적으로, 교육철학 면에서) 선생님을 찾는 게 제일 중요하고, 아무래도 인지교육을 피하려다 보면 예체능 쪽 수업이 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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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승훈 | 2010/11/15 12:57 | PERMALINK | EDIT/DEL | REPLY
유소년 축구단은 어떠신가요 ㅡ.ㅡ;;
전 저희집 바로 옆에 박지성 유소년 축구단이 있어서 거기에 보낼 생각이예요. 먼 미래의 일이긴 하지만 ㅡ.ㅡ;;
surfnsun | 2010/11/15 17:18 | PERMALINK | EDIT/DEL
은실이 사는 수원 살아서 좋겠수.
나도 그런 거 시키고 싶다~~
우리 애는 누가 드리블하며 달려오면 샥~ 피해주는 아이인데, 나중엔 할 수 있으려나? ^^
대구 오면 연락 좀 하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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